Heal the world,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

Heal the world.
Make it a better place.
For you and for me and the entire human race.
There are people dying.
If you care enough for the living.
Make a better place for you and for me.


마이클 잭슨은 노래했다. 
세상을 치유해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고조금씩만 노력하면 우리는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고. 

이 노래에 전 세계가 열광한 지 20년이 지났다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과 내전이 빈발하고한쪽에서 넘치는 음식물쓰레기로 고민하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Heal The World. 

이제는 더이상 유명 가수의 노래 제목이 아니다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공허한 구호도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작은 변화이고따뜻한 진보이며착한 혁명이다. 
이제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다. 

If you change yourself, The world will be changed for you too.(앵거솔)

우리가 바뀌는 순간이 세상도 우리를 위해 바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지구 행복 프로젝트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1부에서는 내전에이즈아동 노동기아 등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작은 관심으로 치유할 수 있는 일들을 모았다. 이 끔찍한 현실이 모두 우리의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아무 생각 없이 즐겼던 커피와 초콜릿이 모두 저 먼 곳 어린아이들의 노동으로 생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진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그리고 이 재앙 같은 현실에 침묵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을 전파한 사람들의 굳건한 신념은 우리에게 훈훈한 감동과 함께 작은 관심을 모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줄 것이다. 

  2부에서는 오존층 파괴지구 온난화사막화생물 멸종 등 돌이키기엔 너무나 늦어버렸지만작은 실천으로 서서히 회복할 수 있는 일들을 모았다. 해가 갈수록 급격하게 커져가는 오존층의 구멍이 구멍으로 쏟아지는 자외선 때문에 언젠가 SPF 96의 선크림이 필요한 시대가 다가올지 모른다지난 한 세기 동안 상승한 0.6℃의 대가는 어떠한가인도의 뭄바이는 최고 50℃의 기온을 기록했고급작스러운 홍수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모두 지금 바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긴급 사태들이다하지만 이 사태의 긴급성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특히 모피코트 때문에 처절하게 죽어가는 아기 하프실의 사진은 모피의 인기가 시들지 않는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3부에서는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들을 모았다. 그 첫 장이 ‘에코 셀러브리티’로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스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엄격한 채식주의자이자 동물 애호가인 나탈리 포트만이 했다는 말“나는 누군가를 강제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내가 내 가치에 따라 행동하듯 타인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다누군가 내게 묻는다면매사를 무신경하게 흘려보내지 말고자신의 의견을 가지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는 매사를 무신경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소소한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실제로 3부에는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함께할 수 있는 작은 행동지침들이 담겨 있다예컨대 스테이크 반 조각만 줄여도, 15명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생긴다는 마법 같은 법칙이 그렇다그리고 이 책 마지막에 수록된 ‘내 생애 가장 친환경적인 일주일’은 실제로 친환경적 규칙에 따라 생활한 일주일간의 체험을 보여주고 있다어려운 것은 비누로 머리를 감고 육식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가장 힘들고 슬픈 일은 이 정도 행동지침을 일주일만이라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빨리 일주일이 지나가서 편리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고픈 나태함그리고 일주일의 약속을 깨더라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슬픈 자유와 마주하는 것이다. 



사막 같은 세상의 한 그루 나무 같은 책

  가진 자의 욕심과 대다수의 무관심으로 재앙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그리고 이 불균형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갈등을 해결하려는 사람들 또한 있다붉은 리본을 다는 사람들국경 없는 사랑을 펼치는 의사들가난한 이들에게 믿음을 빌려준 사람들… 자신의 믿음에 헌신하며 경계 없는 치유의 기적을 행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혼탁한 세상의 엘리야다. 『힐 더 월드』가 사막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한 그루 나무로 자라나길 바란다당장 숲이 되는 기적을 바라지는 않는다다만 이 책의 작은 이야기들이 당신이란 사람과 이 세상에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기를. _김미화(방송인)

  “진실아 쓰라린 진실! 『힐 더 월드』를 읽다가 프랑스 혁명가 당통의 말이 떠올랐다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행복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재앙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모두가 유복하게 성장하고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지는 못하더라도 학대받거나 착취당하는 사람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원칙이다. 『힐 더 월드』를 읽다보면 이 당연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차마 아파서 자세히 알고 싶지 않던 그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그럼에도 작은 힘을 모아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이들 덕에 이런 깨달음도 얻게 된다_타블로(뮤지션)

 


[인터파크 도서 제공]







테리 조지 감독의 영화 <호텔 르완다>는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벌어져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의 대규모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전’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살육전은 르완다를 넘어 부룬디까지 번졌다. 


두 부족 이외에도 아프리카 곳곳에는 부족 간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미 종결된 내전이라도 아직까지 그 후유증을 안고 있다. 그들은 본래 철천지 원수였으며, 유럽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뒤에 자원을 놓고 자기 부족만의 이익을 챙기느라 벌어진 어리석은 일이라고 치부되기도 하는 그들의 반목. 진짜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영화 호텔 르완다 (2004년 작품. 테리 조지 作)




사람마다 사회마다 각기 다른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는 경계가 있다. 한국인(한국 언론)의 경우 주로 ‘민족’을 그 기준으로 삼는다. 단일민족을 운운하다가 민족주의의 폐단을 이야기하는 한편, 아버지나 어머니도 아닌 외할아버지가 한국인인 어느 유명인사를 ‘자랑스러운 한국계 OO인’이라고 소개한다.


같은 시간, 또 다른 공간에는 오랜 동안 ‘부족 혹은 씨족’을 기준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땅, 아프리카에 식민 사업을 진행한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의 기준을 무시한 채 여러 부족을 한 국경 안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특정 부족을 자신들의 끄나풀로 삼아 다른 부족을 억압하고 관리하게 하였다. 이 때부터 부족 간에는 힘의 부등호에 따른 자연스러운 충돌과 지배-피지배의 관계를 넘어선 비정상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투치족과 후투족이 있다. 당신은 르완다 내전이나 부룬디 내전 등으로 이들의 이름을 들어보았을지 모른다. 서방에서 만들어진 미디어나 자료는 두 부족에 대해 흔히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투치족은 본디 체격이 크고 호전적인 사람들이라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온순한 후투족을 지배해왔으며 두 부족은 서로 원수지간 이었다고 말이다.

 

후투족에 비해 월등한 신식 무기를 이용했다든지 정비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든지 하는 사료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지 ‘상대적으로’ 호전적인 성향의 소수 부족이 ‘온순하다고 추정되는’ 다수 부족을 지배했을지 쉽게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한 발 양보해서 두 부족간에 실제로 명확한 지배-피지배 관계가 있었다 한들, 유럽이 그들에 대해 기록을 하기 이전에 그들의 관계는 알 길이 없다. 그들의 관계가 그저 다른 부족 간의 자연스러운 충돌과 경쟁 정도였으며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유지하고 번식하기 위한 전투가 있었을 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르완다 내전과 같이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낳고도 해결되지 못한 투치족과 후투족의 분쟁에 대해 서방의 분석은 오로지 ‘그들은 원래 갈등 관계였다’ 이다.


실상 아프리카 부족간에 살벌한 반목이 일어난 원인과 증거를 찾을 수 있는 시기는 유럽이 아프리카를 지배하면서부터이다. 1923년 벨기에는 유럽인의 편의대로 그은 ‘틀’을 기준으로 투치족과 후투족을 한 데 뭉뚱그려 르완다-우룬디를 통치한다. 벨기에 관리들은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소수의 투치족을 끄나풀로 삼았다가, 2차 대전 이후 투치족이 독립을 요구하자 이번에는 후투족과 연맹한다. 1962년 르완다-우룬디에서 르완다가 분리되고 부룬디가 독립할 당시 르완다 지역의 투치족은 별도의 격리구역(대외적 명칭은 ‘보호구역’)으로 내몰렸다. 침략자인 유럽의 선택에 의해 두 부족은 억압과 특혜를 번갈아 받게 되었고, 서로간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투치족의 선택도, 후투족의 선택도 아니었던 ‘국경’ 안에서, 역시 둘 중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던 ‘국가 단위 경제 체제’와 ‘시장경제’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두 부족은 갈등을 해소하기 쉽지 않았고, 르완다 내전과 부룬디 내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내전이란 것은 그 역사적 이유야 무엇이든 아프리카 사람들이 ‘크게 볼 줄 모르고’ 자기 부족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나아가 이러한 저질 근성 때문에 먼 과거에는 그들이 노예가 되었고 가까운 과거에는 그들의 땅이 식민지가 된 것이라고.


우리는 알아야 한다. 중앙집권적 국가라는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고(따라서 미비했고) 생존을 위한 전투는 있었더라도 대규모의 전쟁은 없었던 그들에게는, 정비된 군대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유럽인들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다는 것을. 그것이 침략을 받게 된 주된 이유라는 것을. 그들은 오랜 세월 식민을 경험했고 유럽의 시장경제가 탐내는 자원은 풍부하나 식량은 부족한 상황에서 절박하게 살아왔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삶을 살아온 이들이나 세련된 인문학 교육을 받은 이들만큼의 선택의 폭과 사유의 깊이, 교양과 배려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전을 그들의 근성 때문에 벌어진 문제로 본다면 내전의 후유증 또는 진행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지구촌의 갖가지 풍경과 정황 중 하나로 스쳐갈 것이다. 내전을 역사가 만든 비극으로 본다면, 우리는 그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상황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돕는 움직임도 선택할 수 있다. 


내전의 폐허에서 고통 받는 그들에 대한 당신의 시선, 그 선택은 어느 쪽인가?






'그들이 티비에서 이 학살장면을 본다면 경악을 하고 불쌍하다 말할 거에요. 그리고 다시 저녁을 먹겠죠.' 

'우리를 구해줄 사람도, 우리를 위해 나서 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를 도울 것은 우리 자신 밖에 없습니다.'


- 영화 호텔르완다 대사 중






Kim, kyunghwa

khashi@uhi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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