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UHIC의 키퍼 프로젝트 제1기 후보학생으로 선발된 쿰보이다. 각 오지마을은 물론 도시에서도 선발된 후보학생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있다. 이대로라면 오는 3월에 키퍼로 최종 결정되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제 2월까지 실제 활동에 대한 집중 교육만 잘 받으면 3월부터 키퍼로 파견되어 우리 마을과 아이들을 돕게 된다. 

 

UHIC에서는 몇 달 전부터 오지마을에 키퍼 룸(Keeper's Room)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각 마을마다 공터 사용을 협조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키퍼 룸은 방 한칸 규모의 작은 공간이지만, 나는 그 앞마당까지 깨끗이 관리해서 알차게 사용할 것이다. 방에는 구급상자와 각종 물품과 기록지를 깔끔하게 보관할 것이다. 의사가 우리 마을에 정기검진을 오면 검진실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청결히 해야지. 앞마당은 의사 검진 대기실로도 쓰고, 위생교육을 위한 모임 장소로도 활용할 것이다.

 


<UHIC에서 고안한 키퍼 룸의 설계도. 이 방은 오지마을의 아동 건강관리를 위한 물품 저장소로 사용된다.>




키퍼 룸은 단단한 벽돌, 또는 판넬이라는 자재로 짓는다고 한다. 그렇게 지은 집은 벽 틈으로 모기나 모래바람이 들어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정말 청결하고 단정하게 잘 관리해서,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는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나가야겠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꽤 좋은 편이지만, 흙벽으로 지어져 있다. 그래서 틈새와 부실한 문간으로 모기와 모래바람이 자주 들어오기 때문에 바닥이든 이부자리든 깨끗한 상태로 지내기가 어렵다. 우리집보다 못한 대부분의 집들로 한밤중에 모래바람이 들이치면, 잠든 아이들은 그 먼지바람을 그대로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기에도 속수무책이다. 내가 배운 바로는 말라리아, 폐렴, 기관지 질환, 각종 위생 질환의 문제가 있겠다. 키퍼 프로젝트를 통해 UHIC에서 효율적인 Action을 개발하고 키퍼가 그것을 수행하면 그런 질병들을 차차 예방해나가게 될 것이다.




<오지마을의 일반적인 가옥 상태. 전통적인 방식으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흙과 짚으로 집을 짓는다. 기후에 맞게 개방적이지만 견고함과 위생 면에서는 현대식 가옥에 비해 떨어진다. 특히 영유아의 기관지 문제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조금 지나자 우리 마을의 푼디(집짓기 등 건축 노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스와힐리어)도 회의에 합류했다. 그가 나의 키퍼 룸을 지어줄 것이다. UHIC 사람들은 푼디와 가격도 맞추고 이야기를 잘 진행했다. 나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내가 해 나갈 일들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그때 갑자기 Mr.Shin이 나를 가리켰다.

"당신도 같이 지어야죠."

 

나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얼른 물었다.

"푼디와 같이 집을 지으라고요?”

 

그러자 Mr.Shin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사용할 당신의 오피스잖아요."

 

그 말에 이장님과 마을 어른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UHIC의 직원들과 의사도 웃었다. 나도 얼떨결에 웃음이 나왔고, 그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푼디가 아니다. 나는 보건 전문 지식을 교육 받았고, 영어도 잘 한다. U 센터 견학 실습도 해보았고, 키퍼 후보학생 중에서도 우등생이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일할 키퍼가 될 것이다. 그런 나에게 푼디가 키퍼 룸을 제대로 짓는지 감독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푼디와 함께 집을 짓는 일부터 하라니.......

 

불과 며칠 전 특별 수업 시간에 Mr.Shin은, 키퍼 한 사람이 수백 명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나와 동기들에게 아이들의 삶과 마을의 환경을 새롭게 하는 리더가 되라고 말했다.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해내려고 각오하고 있는데, 푼디처럼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바르면 마을 사람들이 과연 나를 키퍼로 존중해줄까?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 나의 건강관리활동을 존중하며 잘 따라줄까? 내가 상상했던 키퍼로서의 내 모습은 이게 아닌데.......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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