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에이즈. 14세기 흑사병과 16세기 천연두처럼 불치의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흑사병과 천연두가 과거 속으로 사라졌듯이, 에이즈도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갈 날이 멀지 않았다. 계속적인 치료가 이루어진다면, 최고 30년까지 생명의 연장이 가능하고 치료 가능한 약의 개발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계도 한 부분이 고장 나면 사용하지 못한다. 지구의 한 부분 아프리카가 에이즈로 고통 받고 있다. 그들에게는 에이즈를 예방하고 치료할 힘이 부족하다. 전 인류가 함께 예방하고 치료한다면, 에이즈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아프리카의 에이즈는 ‘고통의 연속’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신비로움, 미지의 세계, 야생동물의 천국, 그리고 그 이면의 가난과 질병 전쟁과 기근 같은 슬픈 이미지도 있다. 실제로 지금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로 고통 받고 있다. 에이즈가 창궐하는 나라는 보츠와나, 나미비아, 짐바브웨, 스와질랜드와 같이 주로 아프리카대륙 남부에 위치한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의 에이즈 감염률은 평균 20%이상이다. 이 20% 가운데서도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해야 할 청장년층의 감염률과 사망률이 높아 그 사회의 기반과 발전 가능성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또한 에이즈에 걸린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이 질병에 감염된 채 태어나며,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할 경우 고아가 된다. 그들은 교육과 생활 환경을 보장 받지 못하고 가난과 질병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에이즈 확산,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에이즈가 이렇게 확산된 원인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의 예로 알아보자. 남아공 인구 가운데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람은 14% 이상이고 이대로 간다면, 남아공 평균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유엔이 보고한바 있다. 


남아공의 에이즈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과거 인종 분리 정책을 펴면서 오랫동안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에이즈를 치료하고 예방하는 연구가 선진국들에서 이루어져 왔는데,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지 않았던 남아공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아프리카 국가들이 에이즈를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아니다. 정부가 실시하는 공중 보건 캠페인과 같은 프로그램은 거의 볼 수 없었고, 국민들도 콤돔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에이즈가 더 빨리 퍼졌다.

우간다의 경우 내전으로 인해 에이즈가 확산되었다. 이 지역의 에이즈 확산경로를 보면 반군과 정부군의 전선에 따라 에이즈가 확산된 것을 알 수 있다. 에이즈에 걸린 여성을 납치, 강간하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이 에이즈가 확산된 것이다. 강간이 아니더라도 가난 때문에 몸을 파는 여성들을 통해 에이즈는 더욱 빠르게 퍼졌다.


잘못된 아프리카 유목민의 전통도 한 몫을 한다. 이들의 전통에 따르면 에이즈로 죽은 형제의 자식들은 남아있는 형제들이 모두 맡아 키우게 되는데, 이 때 자식뿐만 부인도 함께 취하게 된다. 여기서 에이즈로 죽은 형제와의 성관계로 에이즈에 걸렸을 수 있는 형제의 부인과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또 다른 에이즈의 확산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는 ‘성적정화의식’이라는 악습이 있는데 남편이 죽으면 그의 아내를 남편의 친척들이 집단으로 강간한다. 그러면 죽은 남편의 영혼이 자유로워 진다고 믿는 것이다. 이 때도 에이즈로 죽은 형제의 부인을 취할 때와 마찬가지로 에이즈가 감염될 수 있다. 여러 가지 잘못된 전통이 에이즈를 더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프리카에서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 가운데 30% 이상이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태어난다는 점이다(이 중 85% 이상이 남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이 아이들의 평균 수명은 2년 정도이며, 사망하지 않고 자라더라도 언제든지 발병할 수 있는 병을 가지고 살아갈 뿐 아니라 그 병을 남에게 옮길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예방하고 에이즈 확산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에이즈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로서 수혈이나 성접촉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된다.  HIV에 감염되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손상되고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을 넘게 되면 치명적 감염증을 일으켜 에이즈(acquired immuno deficiency syndrome : 후천성면역결핍증)로 진행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HIV에 감염된 후 8~10년이 지나면 에이즈로 진행된다.  그러나 수혈로 감염된 경우에는 기간이 더 짧아져 보통 3~4년 후면 에이즈로 진행된다.



너무 많은 말, 너무 적은 행동 


아프리카 정부에서 발표하는 에이즈 관련수치는 실질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어떤 행동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들을 돕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 에이즈 관련 기금의 67%가 약을 구입하는 데 쓰이고 있다. 약값이 비싼 이유는 치료약의 특허권에 대한 로열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약값이 훨씬 저렴한 복제약품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다국적제약회사들은 이러한 복제약을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에이즈 기금을 원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치료약이 공급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간다 정부에서는 무료로 약품을 나누어 주지만 사람들은 약을 받으러 갈 차비조차 없어 치료받기가 어렵다. 약품이 전해지더라도 문제인 경우도 있다. 우간다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네비라핀은 그 부작용 때문에 처방이 금지되어 있지만 우간다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고 계속 처방해 왔다. 

많은 사례연구와 에이즈를 대하는 관료와 지식인들의 말을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에이즈 치료제 ‘이윤이냐, 생명이냐’


에이즈 치료에 필요한 약 값은 탄자니아와 우간다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의 30~40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을 본다면, 정품가격의 2~3%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복제약을 인도나 태국으로부터 들여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 입을 것도 부족한 이들에게 약 값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제약사들은 특허권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신약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약값에 불만을 품은 제약회사들은 신약을 공급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가격은 시장의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 나라들보다 경제 수준이 훨씬 좋은 OECD 국가들에 비해 비싼 약값을 지불하기도 한다. 특허권에 대한 공통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자생할 힘이 부족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다방면에서 외부 세계로부터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제약회사의 에이즈 치료제의 혜택을 기다리고 있는 에이즈 환자는 남아프리카에만 530만 명에 이른다. 사실 특허권은 자연권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하나의 개념적인 권리이다. 치료제가 있어도 살 수 없는 이들의 죽음을 그냥 모른 척한 채 특허권의 로열티를 고수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WTO 회원국들은 아프리카 환자들의 고통을 인식하고, 이 약품에 대한 접근법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최빈국들은 2016년까지 제약 특허권에 대한 지불을 면제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국경 없는 의사회의 한 사람은 “우리에게는 버거운 일이죠. 그렇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없다고 해서 그만둘 순 없죠.” 라고 말한다.






희망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질병에 신음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국경 없는 의사회의 사람들이다.


* 우리가 이 일에 등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졌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피치 못할 일이었죠. 에이즈 치료에 대한 인도주의적 논쟁이 거셌습니다. 이 논쟁으로 인해 에이즈 역학이 변할지는 모르지만 에이즈를 앓고 있는 환자들도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질환을 인도주의화 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죠.”  -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댄보르토로티.2007 中


가난과 재해, 전쟁으로 고통 받는 곳에 차별 없는 의료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된 국경 없는 의사회(MSF)는 무수한 위험 조건 아래서도 불우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그 동안 자신들이 에이즈 치료에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헌신을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한편, 2002년 이후 예방에 초점이 맞춰진 삼제요법(에이즈 바이러스의 복제를 예방하기 위한 세 가지 약물의 혼합 요소)이란 약물 치료를 개발하여 헌신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활동의 범위를 넓혀 이 약의 가격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MSF는 밀알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이 땅에 떨어져 많은 생명을 살리는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만으로 모든 질병을 대처 할 수는 없다.


이들처럼 전문 지식이 있어야만 에이즈를 앓고 있거나 감염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MSF와 같은 단체의 활동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것, 또는 이러한 활동을 응원하는 것, 앞서 말한 ‘최빈국에 대한 제약 특허권 지불 면제’와 같은 사회적 결정이 이슈화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으고 힘을 싣는 것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은 많다. 이러한 활동은 어느 먼 나라에 얼굴도 모르는 아픈 사람이 불쌍해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어느 곳에 살든 지금 현재를 함께 살아가며 같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에서 돕는, 인간다운 삶의 일부이다.



Chun, Eunyoung



이 글은 (사)국제아동돕기연합에서 2008년부터 발행한 매거진 월간 U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