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ECHC
센터 자원봉사를 지원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생명의 존귀성.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말라리아 모기와 설사 등으로 매일매일 생명을 잃는다. 불치병이어서가 아니라 영양상태가 안좋고 약이 없고, 대처방법을 몰라서 등등. ECHC는 탄자니아에서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사후 진료 뿐 아니라 사전 예방 교육도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솔직히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 있는 대지 Africa에 살 수 있다는 것도 한 몫 했다. 




Q.    현지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생활적인면에서) 그리고 어떻게 상황을 극복했는지?

 

A. 말라리아 걸렸을 때. 힘들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온 몸이 쑤시고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고, 밤새 설사하느라 잘 수가 없고.. 구토를 멈추려고 먹은 약이 몸에 맞지 않아서 또 토하고. 설사를 멈추려 한 약은 말을 듣지 않고. 말라리아 약을 먹으면 약에 취해 해롱해롱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때는 전화 버튼 누르는 것 조차 버겁다. 그냥 침대에서 널부러져 쉬다가 얼큰한 신라면 먹고 약 먹고 뜨거운 전기장판에 몸 지지는 것이 말라이아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자세다. 

 

오토바이 사고 났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맞은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마주 온다. 운전수와 눈이 마주쳤다. 내 쪽에서는 피할 공간이 없는 걸 분명히 알면서 상대방은 피하지 않고 나에게 곧장 달려와 부딪치고 만다. 넘어져서 스스로 내 상태를 살피는 사이 오토바이 운전수, 한번 뒤돌아 쳐다보더니 도망간다. 탄자니아에 산 지 1년 정도 되면 그런 순간에 화도 나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연민이 생긴다고 해야 할 듯. 별로 안 다쳤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런데 그때 뭔가 허전해 가방을 뒤지다 보니 핸드폰이 없다. 가방에서 튕겨나가, 넘어진 내 뒤로 떨어졌던 핸드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 와서 냅다 챙겨갔다고 한다. 정황으로 보아 한 패는 아닌데 그게 더욱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다쳐 정신이 없는 틈을 이용해 물건을 훔치는아직도 씁쓸하다. 정말로 사랑하고 깊이 정든 Africa, Tanzania 그리고 Tanga.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가 보다. 그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냥 미운 정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몸무게 체크하는 아동 모습

 

 

Q.     센터에서 일하면서 행복했거나 보람된 점이 있다면?


A.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할 때. 5세 미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 버린다. 작년에 처음 봤을 때는 오뚜기 처럼 갸우뚱 갸우뚱 불안불안하게 걸으며 엄마 손 잡고 왔었는데 몇 주전에 다시 보니 건강한 모습으로 중심 무게 멋지게 잡고 센터를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 가만히 좀 있어봐. 또 한번 보여드려야겠군!”         요즘 제가 좀 걸어요. 아장아장



Q.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작년 말 크리스마스 연휴 시, 휴가를 마치고 일찍 돌아와 환자기록을 정리 해야 했다. 퐁궤에는 전기가 한참 없는 때라 환아 카드를 이민가방에 챙겨서 집으로 옮겨 일을 해야했다. 택시를 타고 나오다가 택시 운전수가 물을 사기 위해 마을 입구에서 멈췄다. 물을 사들고 온 운전수가 하는 말이 가게집 아주머니가 슬퍼한다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우리 동네 애들 아플 때 도와주는 사람인데 떠나나 보다고 했다고 한다. 난 그 아주머니 가게에 한 번도 들린 적이 없고 그때까지는 거의 회사차를 타고 출퇴근했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는데 나를 알고 있다. 그리고 슬프다고 했단다. 많은 눈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구나하며 새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Q.
   
가장 가슴아팠던 아동 또는 일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아침에 출근해서 입원실에 가보니 갓난아기가 자기 몸과 비슷한 크기의 링겔을 투여받으며 힘없이 누워있었다. 이 아이 역시 말라리아. 저녁에 퇴근하기 전 다시 들른 입원실에는 숨을 거둔 아기와 아기 대신 나를 데려가라고 울부짖는 엄마가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질병으로 인해 위험한 순간에 이르는 경우 중 하나는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으로 후송하는 시간이 지체되는 때이다. 의사 말로는 조금만 일찍 병원에 왔어도 살았다고 한다.

한 아이가 심한 저체중으로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 아이의 몸무게 기록카드를 살펴보니 몸무게가 오르락 내리락 여러 개의 산 봉우리를 그리고 있다. 기존에도 영양죽 파우더를 받아갔던 아이인데 또 저체중이다. 알고보니 영양죽을 먹을 때는 몸무게가 향상되었다가 영양죽을 먹지 않을 때는 몸무게가 다시 하락한다. 우리는 영양죽 파우더를 배포함과 동시에 보호자에게 아동영양에 대해 교육도 실시한다. 그런데 이 아이의 경우, 어머니가 직업이 없고 아이에게 음식을 해줄 돈도 없단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스스로 밭을 일궈 아이에게 영양소를 공급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에 대해 어머니는 당장은 씨를 뿌려 채소를 키우자니 씨를 살 돈도, 씨를 뿌릴 땅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나에게는 아이가 꿈을 꿀 기회도 시간도 없다는 것으로 다가와 마음에 맺힌다.

 



Q
.    한국음식 또는 한국생활 중 가장 그리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김치찌개, 하얗게 무친 콩나물, 겉절이 김치랑 김치 속.
매주 토요일 또는 일요일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함께 공원을 거닐거나 오손 도손 모여 앉아 나눴던 외식구들과의 대화시간.    

 

Q.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지역주민들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어떤 것인가요?

A.
행복해졌다. 예전보다 더욱. 더욱.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도움을 나누고 하다보니 마음이 살찐다. 토실토실하게.

 

ECHC와 함께 일하는 보건위생관리원분들. 처음엔 부탁을 하는 일들에 겨우겨우 협조해 주시던 분들이 이제는 자발적으로 내가 할께요하신다. 감동이다. 받는 것에 익숙해있던 분들, 이제는 우리사업이 우리의 이익이 아니라 본인 그리고 본인들의 이웃을 위한 일임을 알고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해간다. 

 

어디, 그동안 얼마나 컸나?! 아동의 몸무게를 확인하는 천윤옥 단원.




Q. ECHC 센터 자원봉사를 지원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20대의 중반이 된 나를 되돌아 봤을 때 그 동안 나는 너무 나를 위해서만 살아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 기술, 의학의 발달로 생명연장의 꿈은 날로 커져만 가는 21세기.
얼마나 살았냐 보다는 어떻게 살았냐 가 중요하다 싶어 모두가 바쁜 세상, 그 안에 서 있는 ‘나’를 깨워 부족한 존재이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떠나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Q. 현지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 그리고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했는지?

A. 아직 한달 밖에 안된 병아리 봉사단원이라 힘든 점은 없지만 굳이 꼽자면 주3회 이상 엄습하는 정전! 가끔씩 그와 함께 동반되는 단수 ? 혹은 노란물.. ^^
정전을 대비해 항시 촛불을 놓아 두고, 단수가 되면 하루 정도는 씻는 걸 포기 하고 잠을 청하지만 가끔 샤워 도중에 단수가 될 때면 생수로 씻어야 하는 상황도 있어요. 지난 번엔 샤워기 물 틀어놓고 씻는데 물에서 나뭇잎이 나왔어요 ^^
참으로 자연친화적인 삶이죠 ?!  Eco Life를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Q. 센터에서 일하면서 행복했거나 보람된 점이 있다면

A.  5세 미만의 저체중 아동들에게 영양 죽 파우더를 배포하는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 있습니다. 저체중의 주된 요인으로 영양 결핍이 있을 수 있어 저체중인 아동을 선별하여 영양 죽 파우더와 비타민시럽을 제공하고 4주 동안의 체중 변화와 건강 상태를 확인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수 많은 아동들이 저희 ECHC의 지원을 받았으며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 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몸무게가 정상수준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Q.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교통편 관련 하여 저희는 매일 센터로 갈 때 달라달라(현지 교통수단 우리나라 옛날 봉고차나 학원버스 같은)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주로 저희는 제일 뒷자리나 조수석에 앉습니다.
제일 뒷자리에 앉아 갈 때 분명 4명이 앉는 자리임에도 한 명씩, 한 명씩 다가와서 앉습니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덩치를 보며 체형이 작은 사람이 다가올 때면 "아 다행이다!" 하고, 하체가 발달 된 어머니라도 다가오면 그날은 골반 축소의 압박을 느끼며 40분 정도를 달리고 하차 하여 무사한 골반을 확인합니다. ^^ 
가끔 닭도 동승합니다. 푸근하죠. Be natural.
  

저울을 점검하는 천윤옥 단원, 0에 잘 맞춰진거지?!


Q. 가장 가슴 아팠던 아동 또는 일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현지 도착 후 적응 훈련 교육 4일차 되던 날 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한 여자아이가 너무나 힘없이 입원실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고 환아의 상태가 심각 했는지 퐁궤 간호사 세 분이 온 종일 그 환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후에 하루 업무의 마감을 위한 트레일러 약품재고 파악을 선배단원으로부터 배우고 있었고 저의 등 뒤 침대에 그 환아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고 울음조차 없었습니다.
약품재고 파악이 다 끝나갈 때쯤 환아의 어머니가 오열을 했고 놀라서 뒤돌아 봤더니 얇은 천이 아이의 몸 위로 덮어져 있었습니다. 순간 제 몸이 서늘해 지고 마음과 눈은 뜨거워졌습니다. 불과 조금 전 만해도 힘은 없었지만 커다란 눈을 깜빡 꺼리던 예쁜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이 나 조차도 마음이 아려오고 아픈데, 엄마는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후로도 쓰러져 오열하였고 저희는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숙연해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간호사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말라리아 때문에 다른 병원에 갔다가 잘못 된 처방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저희 센터로 왔지만 상황을 돌이키기엔 이미 늦어버렸던 것 이었습니다. 의료분야에 있어서 선진국인 우리나라 에서도 아직까지 의료사고에 있어서는 열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물며 아프리카에서 누구의 책임이냐를 묻는 것 조차 무색하기만 하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안타까울 다름 이었습니다.
그 일을 타산지석 삼아 올바른 약품 처방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우리들의 과제겠죠.        
     

 

아이들에게 우유를 나눠주고 있네요~


Q. 한국음식 또는 한국생활 중 가장 그리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보통 평일엔 간단하게 현지 식으로 짜파티나 빵을 먹지만 주말엔 한국음식이 그리울 틈이 없이 나름 흉내 내어 요리해 먹고 지낸답니다. 매운 라면이 그리울 때면 아랍에서 만들어진 밍밍한 라면에 인도 산 고춧가루(엄청 매움)와 양파, 마늘 달걀을 넣어 먹으면 꽤 그럴싸한 辛라면이 아닌 新라면이 탄생합니다. 역시 한국인은 매운 맛 이죠. 이제 양배추로 김치도 담그려고 합니다 ^^


Q.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지역주민들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어떤 것인가요?


A. 소소한 것들로부터 행복과 만족,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전이 되었다가 전기가 들어왔을 때, 단수가 되었다가 물이 나왔을 때의 희열, 매일 아파서 ECHC를 방문하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는 구나 하는 감사함,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푸른 초원과 파란하늘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함을 느낍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여기서는 행복감을 가져다 줍니다. 아프리카에 오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테죠.
탄자니아에서 한국은 아직 생소한 나라입니다.
많이들 동양인 = 중국인 이라고 생각해서 가는 길 마다 마주치는 사람들 마다 치나(중국인) 치나 ~라고 외치지만 센터를 오가는 길에 ECHC와 한국을 아는 주민들이 차차 늘어나면서 와코레아(한국인들) 라며 반겨 주는 주민들,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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