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제아동돕기연합의 미혼모 자립 프로젝트인 NABI 사업의 탄자니아 현지 매니저, 다마스 캄바두이다. 그리고 오늘은 유명 관광휴양지인 잔지바르로 1박 2일의 짧은 출장을 왔다.

 

한국 출장 팀은 어제 잔지바르로 와서, 뒷골목의 작은 가게부터 가장 고급스러운 상점까지 둘러보았다고 한다. 우리는 작은 기념품점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게마다 비슷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목각 장식품, 캉가 천, 옷과 가방, 동물 인형 등등... 그러다 어느 가게에 들어서자 식물 섬유를 꼬아 만든 부채가 있었다. 부채는 후미진 곳에 있었다. 내 생각이 맞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부채는 인기가 없고, 주력 상품이 될 수 없다.

 

그때, 이사장 Shin이 가게 주인에게 NABI 부채 샘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유쾌한 말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캉가 천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으며 매우 가볍기 때문에 바람도 잘 만들어지고 햇볕 가리기에도 좋다고, 관광객들이 분명 좋아할 거라고, 게다가 불우한 미혼모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부채를 손수 만들고 있는 미혼모 훈련생들>


 

이윽고 그는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부채 규격도 정확하게 통일시키고, 마감 손질도 완벽하게 해서 품질을 높일 겁니다. 그럼 당신 가게에서 팔겠어요?”

가게 주인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부채는 아닌 건가, 생각하던 찰나에 가게 주인이 뜻밖의 대답을 했다.

“지금 그 물건들 그대로 나에게 팔아요. 그럼 내가 내 가게에서 팔지요.”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 같은 상태의 부채라도 우리에게서 사다가 팔겠다니! 게다가 가게 주인은 부채를 사용하지 않는 탄자니아 사람인데 말이다. 그는 이사장과 가격 흥정까지 하려고 들었다.

‘NABI 부채가 조금은, 조금은 가능성이 있는 건가?’

 

우리는 부채 샘플을 팔지 않고 가게를 나왔다. 품질을 높인 뒤에 다시 가져와서, 좀 더 높은 가격으로 팔기로 한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꺼이 지불할 가격으로. 그렇다면 미혼모들을 교육하고 아이들의 영양 공급 및 돌보기를 해주는 비용을 해결하고도, 미혼모들이 자립할 수 있는 수익금도 후원할 수 있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이번에는 좀 더 번화한 골목으로 갔다. 그곳에는 2층으로 된 규모가 큰 기념품점이 있었다. 상점 안에는 관광객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물건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내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보다 상태가 조금 더 말끔할 뿐인데도 가격은 몇 배나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물건들을 구매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탄자니아 여행을 기념하고 추억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탄자니아 고유의 물품과 디자인에 반해서 기꺼이 그 값을 지불하고 있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시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말끔한 모양으로 완성된 NABI 부채가 진열된다면? 잔지바르 뿐만 아니라 아루샤(킬리만자로, 세렝게티, 응고롱고로 등으로 통하는 탄자니아 관광 교통의 요충지)를 비롯한 관광지마다 NABI 레이블이 달린 특별한 물품들이 진열된다면?

 

우리는 해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커피와 음료를 시켜놓고 앉아서 저녁이 다 되어가도록 일을 했다. 미혼모들이 부채를 더 잘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매뉴얼과 견본이 필요한지 이야기했고, 샘플 부채를 뜯어서 안쪽과 작업 과정을 살펴보며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한국 출장팀은 빠른 시일 내에 그림이 함께 있는 제작 매뉴얼과, 작업장에서 쓸 단단한 견본판도 만들어 보내주기로 했다. 몇몇은 이미 노트북을 꺼내 매뉴얼 작업을 하고 있다.


<나비 프로젝트에서 생산되는 물품은 탄자니아를 찾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한 기념품으로서의 판매 증대을 꾀하고 있다. >

 


갑자기 이들에게 고마워진다. 내가 한국 본부의 아이디어에 대해 ‘안 될 거야’라고 판단하며 망설이고만 있는 동안, 이들은 미혼모 자립 사업이 경쟁력을 가질 방법을 열심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품목을 고안했고 그 물건을 어떻게 만들고 어디에 내놓아야 좋을지 연구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여전히 의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함께 가서 가능성을 시험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내가 이곳 잔지바르에 도착해서까지도 내가 주저하고 있을 때, 새로운 시장을 눈앞에 보여주었다.


저 멀리 한국 땅에서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고맙다. 그들에게 꼭 희망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답하고 싶다. NABI 센터에 옹기종기 모인 미혼모들이 어엿한 가장으로 자립하는 날을. 그녀들의 아이들 또한 건강하고 밝게 자라날 미래를. 나아가 아프리카 곳곳에서 내전과 가난 등으로 미혼모가 되어 고통받는 어린 소녀들과 그 아이들이 건강한 삶을 가꾸어나가는 모습을.

 



더 많은 도움이 있다면, 그 날은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더 많은 도움이 있다면, 더 많은 미혼모와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주위가 제법 어둑어둑해졌다. 지금 앉은 자리에서는 종이에 글씨를 쓰기가 어렵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시계를 보니 저녁 식사 때가 훌쩍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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