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기획기사] 아프리카 식민지배 & 독립의 역사
무더운 한여름의 8월을 잘 보내고 계신가요? 더운 날씨로 인해 8월은 대표적인 피서의 달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적 기념일, 광복절이 있는 달이기도 하지요.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다가올 때면 경건한 마음이 듭니다. 하물며 서구 열강들의 식민통치를 받던 아프리카의 국가들에게 독립은 어떤 의미와 감정을 주었을까요?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어떤 독립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는지, 현재까지 받고 있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아프리카 쟁탈전(Scramble for Africa)은 188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14년까지 유럽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아프리카가 몇몇 열강의 식민지로 분할된 사건을 말합니다. 19세기 말 유럽의 열강들은 세계 각지에 대한 식민지 경쟁에 나섰으며 아프리카 역시 이러한 식민지 쟁탈전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1884년~85년에 걸친 베를린 회의는 콩고 강 어귀에 대한 특별 지배권을 주장하는 포르투갈의 제안으로 개최되었고, 이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을 공식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제아동돕기연합의 사업장이 있는 탄자니아 또한 그 탄생이 1886년 맺어진 영국과 독일 간의 협정(Anglo-German Agreement)에 의해 케냐와 탄자니아를 구분하기 위한 경계선이 나눠지면서부터입니다. 독일은 1890~1916년까지 약 26년 간 탄자니아를 통치하였고 1916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해서 탄자니아를 영국에 양도하였습니다. 또한 독일 식민지 시절 마지마지 반란으로 인해 독일군에게 학살까지 겪은 아픈 역사가 있으며, 탄자니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잔지바르섬은 2,000년 전 페르시아를 시작으로 오랜 시간 포르투갈, 오만, 영국 등의 식민 지배를 거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 움직임은 1957년 가나의 독립으로부터였습니다. 서아프리카 해안에 위치해 골드코스트(Gold Coast)라고 불렸던 가나는 노예무역의 중심지이자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40%를 수출하는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오랜 시간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던 콰메 은크루마의 당선으로 1957년 가나는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 때 은크루마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가나의 독립은 의미가 없다"라는 선언문을 남깁니다. 이는 독립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계기가 된 것이죠.
독립을 얻은 가나에서는 1958년 아프리카 국민회의를 열고 전아프리카의 대표들이 모여 해방과 통일을 추진하기 위해 '전아프리카 국민회의'를 설립하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60년에는 나이지리아를 시작으로 17개의 국가가 한꺼번에 독립해 '아프리카의 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963년까지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이 독립을 이루었고, 30개의 나라들은 '아프리카 통일 기구(OAU)'를 만들어 국가 간의 정치, 경제적 통합을 꾀하고 비동맹, 중립 노선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백인이 한번도 발을 디뎌본 적 없는 역의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산, 강 그리고 호수들을 정확히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에도 가까스로 그것들을 배분했다."
아프리카의 시련은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이름을 떨친 영국 총리 솔즈베리의 말처럼 식민지배로 인해 임의로 나누어졌던 아프리카의 국경으로 인해 국가 내에서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천 개의 고유 문화를 가진 다양한 부족들 사이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즉 유럽열강에 의해 민족의 특성과 언어, 역사, 생활환경이 무시된 채 인위적으로 그어진 분할선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 국가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민족적, 문화적 단일 정체성이 결여되고만 것입니다. [1]
이 외 식민지배 이후의 여러 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독립 이후 국경선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던 '카사블랑카 그룹'과의 논쟁 끝에 아프리카 통일 기구(OAU)는 임의로 나눈 국경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하고, 식민지배라는 공통된 경험과 아프리카인들이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공동의식을 바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통일 기구에서 승계된 아프리카 연합(AU)의 활동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의 단결과 통합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아프리카는 자원을 둘러싼 서구와 아시아 국가들의 지나친 경쟁으로부터 또 한번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인 미국, 중국과 같은 나라들은 아프리카의 시장에 급속하게 진출하며 천연자원 획득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죠. 서로의 공격적인 아프리카 진출을 놓고 신식민주의가 아니냐는 시선이 팽배한 가운데,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아프리카를 보호하기 위해 아프리카주의(Africanism)를 뒤늦게 내세우고 있지만, 한편 뒤쳐진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해외 직접투자를 유인할 수 밖에 없는 이중적 모순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2]
1880년대부터 시작된 식민지배로 인해 남은 것은 그 시절의 아픈 역사만이 아니며 현대까지 종족을 임의로 갈라놓아 생긴 내전이나 수출중심의 취약한 단일경작 구조 등의 잔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가진 천연자원을 발굴하고 기술을 지원하겠다는 명목 아래 아프리카 대륙에서 또 한번의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아픈 역사의 반복과 피해가 다시는 없도록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참고자료
[1] AU 출범 이후 아프리카 통합과 우리의 대응방안, 조부연
[2] 21세기 아프리카 대륙, 1884년으로 돌아가는가?, 이한규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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